[소소+] "죽은 아내의 아이를 낳고싶다"... 김수련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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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죽은 아내의 아이를 낳고싶다"... 김수련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 이성복 기자
  • 승인 2018.02.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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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의 고통 겪으며 생명에 대한 성찰
팝음악 배경으로 영화 대사처럼 묘사
작가 김수련

[책한권의 행복 - 김수련 신간 '호텔 캘리포니아'] “숲은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이유와 그 동안의 사정을 구구절절이 전했다. 재민은 단숨에 이메일을 읽어나갔다. 서영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저리면서 온 혈관의 피가 머리로 쏠려 팽팽해져 왔다. 다른 이로부터 서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서영이 떠난 이후로 그녀를 아는 사람들을 애써 피해왔다.”

남자 주인공 재민은 아내 서영이 죽은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내가 그립다. 아내의 이메일을 읽다가 ‘숲’ 이라는 아이디의 여자가 보낸 편지를 보게 된다.

“금색 자물쇠가 굳게 채워진 사춘기 여중생이 교환일기를 우연히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교환일기에는 그가 알지 못한 서영의 이야기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남편이 잘 알지 못했던 서영의 이야기는 난임과 불임으로 고통받은 아내의 속마음이다.

“애들 때문에 후줄근한 아줌마가 된다고 해도 나는 엄마가 되고 싶어. 너희도 그래서 다들 애 낳은 거잖아. (중략… )원래 사람은 갖고 있으면 그게 소중한 줄 모르잖아. 너희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그걸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서영은 친구들과 만나 아기를 가지고 싶지만 임신이 어려운 상황에 대해 푸념을 한다. 서영의 일기와 이메일을 들여다보며 아내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남편은 죽은 아내의 배아를 활용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강해진다. 진짜 대리모를 찾아볼까? 클럽에서 만난 여대생 ‘유리’? 아내의 이메일 친구 ‘숲’?

서영이 죽은 뒤 재민은 서울의 한 클럽에서 영국 유학중이라는 유리를 만나 육체적 탐닉에 빠져든다. 우연히 다가온 젊은 여인에게 대리모를 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끝내 꺼내지 못한다. 유리는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재민을 찾아온다.

“내가 직접 열어준거니까, 내가 스스로 닫아야겠지요. (중략… ) 다시 들어올 생각이 있는지 알아보고 닫아 버리려고요. 들어왔으면 못 나가게, 나갔으면 다시는 못 들어오게.”

유리는 재민의 인생을 휙 지나가버린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인생을 휙 지나가지 못한다. 냉동배아가 있으니 대리모만 구하면….

생명은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사랑은 무엇인가? 욕망인가 번식인가 미련인가? 남과 여에게 사랑과 임신은 어떤 의미인지, 생명의 존엄함과 대리모의 속세적 절차가 어떻게 갈등하며 삶의 윤리를 갉아먹는지 속속들이 그려내는 이 작가가 신인이라고?

‘호텔 캘리포니아’는 ‘난임과 대리모’라는 난해하고 복잡미묘한 주제를 남자와 여자의 살아가는 일상의 문제로 끌어와서 친구들의 대화처럼 읽게 만드는 소설이다.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화자가 바뀌는 ‘입체적 편집’은 남편 재민과 자살한 아내 서영의 두 시점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독자의 사유를 머뭇거리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쉽게 얻은 지식이 지혜가 되지 않듯이 독자의 고통은 곧 예술의 입구일터. 신인 작가 김수련의 문체는 이제 막 예술의 아가리에 독자의 머리를 집어넣은 셈이다.

“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언제든 체크아웃은 할 수 있지만, 떠날 수는 없어요)

소설 제목이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인 것은 남자가 여자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인생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듀크 엘링턴, 엘라 피츠제럴드, 사비에르 쿠가트, 스탠 게츠 앤 질베르토, 빌리 홀리데이… 재즈 취향의 음악들이 문장 안팎으로 넘나드는 음악 소설이기도 하다.

김수련은 연세대학교 철학과 재학 중 독일로 유학, 베를린 훔볼트 대학과 자유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교육학 마기스터(Magister) 과정을 수학했다.

[‘호텔 캘리포니아’ 시놉시스]

1부 유리 그리고 서영

비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서영. 그녀의 남편 재민은 그녀에 대해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서영이 남기고 간 세 개의 냉동 배아.

재민은 대리모를 통해서라도 그녀의 배아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싶어 한다. 그는 예기치 않은 기회에, 영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다 잠깐 서울에 나온 유리를 만나게 된다. 둘은 급격하게 서로에게 빠져든다. 재민은 그녀에게 대리모가 되어 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2부 서영

독일에서 공부를 하던 재민-서영 부부. 서영은 밀레니엄 베이비를 잉태하나 곧 유산하고 만다. 이후 아이에 대한 염원을 품게 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인공임신을 시도한다. 이는 마치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에 나오는 “언제든 체크아웃은 가능하나, 떠날 수는 없다”라는 가사처럼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굴레에 갇힌 느낌이었다. 생의 의지조차 시들게 하는 난임의 고통. 다른 사람들은 참 쉽게도 아이를 낳는데 그녀는 이토록 고통스럽게 아이를 염원했어야 했는가? 이는 난임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결국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세상을 등진다.

3부 재민 그리고 숲(채린)

유리와 헤어진 재민은 숲(채린의 이메일 아이디)에게 대리모 제안을 한다. 채린은 서영이 난임의 고통에 빠져있을 때 유일하게 친분을 나눈 이메일 친구였다. 채린에게는 대리모를 해서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대리모. 아무리 대리모라 해도 열 달 아이를 품은 엄마이다. 채린의 자궁에 착상된 재민과 서영의 배아가 자랄수록 이 감정은 혼돈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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