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대장암 투병 맹순재 "컨테이너서 7년째, 산이 날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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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대장암 투병 맹순재 "컨테이너서 7년째, 산이 날 살렸다"
  • 신성아 기자
  • 승인 2018.02.23 0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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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번 항암치료 하다 거부, 고향 산 찾은 맹순재씨 사연 공개
[소소+]는 ‘소확행’(小確幸: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찾기가 화두인 트렌드를 반영한 코너입니다. 소소한 밥상이나 구경거리, 거창하지는 않지만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 이름 없는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뉴스와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사진=MBN '나는 자연인이다' 제공

[슬기로운 자연생활 - 맹순재씨] '자연인' 맹순재(55) 씨가 살기 위해 고향 산을 찾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21일 오후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MBN 시사교양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는 7년간 산에서 살고 있는 맹순재 씨의 사연이 공개됐다.

맹순재 씨는 꽁꽁 언 얼음 계곡에서 거침없이 옷을 벗고, 급경사의 험한 산길도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오른다. 그는 7년 전 대장암 수술 후 돌연 항암 치료를 중단한 채 산으로 향했다.

48세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부모님이었다. 직장암으로 8년을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뒤이어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그에게 암은 곧 죽음이었다. 맹순재 씨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건설 현장에 나가 일을 배웠고, 29살 이른 나이에 인부들을 데리고 직접 집을 짓기 시작했다.

실력 좋은 건설업자로 입소문이 나며 돈도 남부럽지 않게 벌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집을 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사 중에도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수시로 작업을 변경해야 했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공사 대금을 깎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중 공사대금을 받기 위한 소송이 연달아 4건 발생했으며, 법원과 공사 현장을 정신없이 오가던 그때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내시경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 종양은 커져 있었으며, 바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병원에서는 12번의 항암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3번 만에 머리와 이가 모두 빠지는 후유증이 왔고,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사진=MBN '나는 자연인이다' 제공

결국 맹순재 씨는 살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 나섰고, 그렇게 선택한 곳이 고향 산이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 하나만 놓고 살다가 몸이 점점 좋아지면서 이곳을 꾸미기 시작했으며, 살림살이가 늘어 컨테이너를 하나 더 붙였다. 방 한 쪽에는 대장암 환자들한테 좋은 쥐눈이콩으로 만든 메주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아침이면 풍광 좋은 계곡에서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된장에 밥을 비벼먹는 것도 모자라 2박3일이 걸려도 간식으로는 위장에 좋은 수수엿과 무조청을 고집한다. "찰수수와 옥수수, 찹쌀 현미로 잡곡밥을 만든다. 잡곡밥은 솥에 얹기 전에 뜨거운 물로 독소를 제거하고, 멧돼지 고기는 삶는 중간에 15분 동안 찬물에 식혀줘야 몸에 좋은 약이 된다."

개그맨 이승윤이 밥을 짓는 모습을 보고 번거롭지 않냐고 묻자 "감로를 모으는 과정이라고 이해를 하면 된다. 번거로워도 소화가 잘 된다. 보통 사람들은 얘기해도 잘 이해를 못 한다"고 답했다. 밥이 다 되자 밥 위에 생들기름을 뿌렸다. 생들기름이 율무의 찬 기운을 따뜻한 기운으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또한, 맹순재 씨는 다친 손에 대해 "어릴 때 작두질을 하다가 잘렸다. 당시 차도 안 다니고 병원도 멀어서 제때에 치료를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저를 업고 이틀 동안 걸어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손가락이 이미 썩어 봉합도 못하고 잘라내야 했다"며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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