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용 고속·시외버스 도입... 정부 “추진” vs 업계 “비합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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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용 고속·시외버스 도입... 정부 “추진” vs 업계 “비합리적”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8.03.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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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KTX 지원이 더 효율적
터미널 승차홈 구조상 턱이 높아 도움을 받아 승하차 하고 있는 모습.

이르면 내년부터 장애인도 고속·시외버스를 탈 수 있도록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세금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 대책’을 마련토록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에 권고했고, 양 기관은 수용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장애인들은 그동안 고속·시외버스, 광역버스, 공항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등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해 7월 국토부장관, 기재부장관을 비롯해 고속·시외버스 업체 대표 등에 대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 등 필요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우선 국토부는 2019년부터 휠체어 사용자가 탑승할 수 있도록 고속·시외버스 일부 노선에 시범운행을 추진하고 휠체어 사용자 탑승을 위해 고속·시외버스에 대한 안전검사기준 개발 완료 및 버스 개조, 터미널 시설 개선 등을 추진키로 했다. 또 광역·시외버스로 활용 가능한 2층 저상형 전기버스를 올 연말부터 개발·도입하는 한편 버스 상용화에 필요한 지원제도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기재부는 2019년도 예산편성과정에서 고속‧시외버스 이동편의시설 설치비 지원사업에 대해 국토부 등과 협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한 표준모델과 안전기준 등이 마련되면 법령 개정,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재정지원 검토를 진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비효율성이다.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장애인 조차 꺼리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4년 7월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장애인용 고속버스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 시범운행을 가진 바 있다. 당시 기자도 탑승해 봤다. 전동휠체어 장애인용 전세버스를 대절해 서울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정안휴게소-공주휴게소-서울강남고속터미널을 장애인 3명(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 2명, 일반 장애인 1명)과 다니면서 장단점을 파악해봤다.

시범운행 시작부터 전동휠체어 탑승은 어려웠다. 터미널 승차홈 간 간격이 넓지 않아 최소 3m의 간격을 필요로 하는 리프트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승차홈 높이는 12cm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장애인들은 앞으로 고꾸라진다. 센트럴시티(경부선)에서도 이용해봤다. 센트럴시티에서는 승차홈 간 간격이 좁아 장애인들이 하차하지도 못했다. 버스의 문제도 있지만 터미널의 문제도 크다. 터미널 토목 리모델링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센트럴 시티를 출발해 12시08분에 정안휴게소에 도착했다. 하차, 화장실, 매점 이용, 승차까지 장애인들의 휴게 시간을 재보기로 했다. ▲하차 4분(12시08분~12분) ▲화장실 이동 및 이용 9분(12시12분~21분) ▲승차 4분(12시21분~25분) ▲안전 장치 장착 및 출발 2분(12시25분~25분)이 소요됐다. 타이머상은 27분이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최소 60~80분이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매점이나 식당을 이용하지 않은 점(30분), 소변·대변을 보지 않고 모습만 취한 점(16분), 휴게소에 인파가 몰려 활동이 지연되는 점(10~20분) 등을 비춰볼 때 27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화장실 이용을 16분으로 잡은 것은 정안휴게소에서 공주휴게소로 운행 도중 장애인 김 씨가 갑작스럽게 대변이 급하다고 밝혀 예정에 없던 휴게소에 추가로 들렀는데, 승하차부터 화장실 이용까지 16분이 소요돼 잡은 것이다. 장애인 김씨는 “남자 장애인들은 그나만 짧게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여자 장애인들은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식사까지 하려면 최소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역시나 기사들의 ‘교통안전’이었다. 장시간 운행속에서 10~20분의 휴식은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데, 휴식시간의 절반을 장애인 승하차 업무로 써야 한다. 한정숙(59, 주부) 씨는 “같이 타서 이동하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똑같은 돈을 지불하고 부산을 가는데, 누구는 3~4시간 걸리고, 누구는 장애인하고 탔다고 해서 6~7시간 걸리면 억울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는 "향후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시외 이동권 보장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가 시행 예정이라고 밝힌 사항에 대해선 그 이행 여부를 지속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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