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5> 왕이 마신 감귤차와 기침·가래·스트레스 해소
상태바
[세종실록과 왕실의학] <15> 왕이 마신 감귤차와 기침·가래·스트레스 해소
  • 최주리
  • 승인 2018.03.19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지방관이 감귤 진상을 칭탁하고, 나무와 열매를 세어서 기록합니다. 열매를 집 주인이 따면 절도죄로 몰고, 과실을 전부 관에서 가져갑니다. 백성이 원망하고 한탄합니다. <세종 9년 6월 10일 > 

감귤. =픽사베이

제주찰방 김위민이 올린 상소의 일부다. 제주 백성이 감귤 진상으로 고통 받는 사연을 보고한 것이다. 그는 백성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으로 관에서 10년 동안 감귤나무를 지속적으로 심을 것을 주장했다. 부득이 민가의 감귤 진상 경우에는 그 값을 넉넉하게 줄 것도 요청했다.

이처럼 백성이 고통 받는 이유는 감귤이 그만큼 귀했기 때문이다. 제주 특산인 감귤은 수량이 한정돼 있다. 또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풍랑으로 인해 배가 전복되기도 했다.

무사히 육지에 도착해도 부패한 것이 다수였다. 조정에서는 다량의 감귤 진상을 지시했다. 수요가 늘수록 공급이 따르지 못해 생산자 농민만 더욱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감귤은 조선에서 다양하게 활용됐다. 먼저, 제사상에 올려졌다. 왕의 조상을 모신 종묘 제향을 시작으로 국가에서 관장하는 도성과 지방의 제사에서 제수(祭需)로 확산 되었다.

다음 신하에게 하사됐다. 감귤은 사신 접대 등 왕실의 연회 외에 신하들에게 하사됐다. 성균관 유생에게 감귤을 나눠주고 치르는 과거시험 황감제(黃柑製)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약재로 쓰였다. 감귤은 두 종류로 진상됐다. 하나는 먹는 용도인 열매다. 또 하나는 감귤 껍질이나 여린 나무껍질을 말린 것이다. 말린 껍질이 한약재로 이용됐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에서 진상한 감귤품목이 실려 있다. 열매인 감자(柑子), 유자(柚子), 유감(乳柑), 동정귤(洞庭橘), 금귤(金橘), 청귤(靑橘), 산귤(山橘)과 함께 열매껍질인 진피(陳皮), 청피(靑皮), 지각(枳殼, 광귤), 지실(枳實)이 보인다. 조정에서는 감귤을 먹는 열매와 약재로 구분해 받은 것이다.

나라에서는 감귤의 안정적인 확보를 꾀했다. 태종은 전라도의 남해안에 귤나무를 심었고, 세종은 강화도에 옮겨 재배하게 했다. 그러나 감귤 생산지 확대 정책은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져 실패했다. 세종은 20년 5월 27일 이순몽으로부터 강화도 귤나무 재배 실험 중단을 건의 받는다. 

귤나무를 심은 것은 생장여부 확인 시험이었습니다. 귤나무 보호를 위해 가을에는 집을 짓고 담을 쌓고, 온돌을 만듭니다. 봄에는 도로 이를 무너뜨립니다. 그 폐해가 한이 없습니다. 귤나무가 거의 10척이나 되기에 집 짓는 데 쓰는 긴 나무 준비도 어렵습니다. 

세종은 백성의 고통을 감안해 강화도 감귤재배 실험을 중단하도록 한다. 왕실에서는 감귤 열매는 먹고, 껍질은 한약재는 물론 차로도 활용했다. 귤의 껍질인 귤피에 주로 꿀을 섞어 차로 만든 귤병차 등을 음용했다.

영조는 생강과 혼합한 귤강차, 인삼을 넣은 삼귤차, 향부자가 가미된 향귤차, 계피를 더한 계귤차, 소엽을 추가한 소귤차, 살구씨를 갈아 넣은 행귤차를 장복했다. 특히 귤피에 계피와 생강을 더한 계강차는 승하하는 해까지 마셨다.

감귤의 약효는 귤피가 더 높다. 귤의 영양소는 알맹이 못지않게 껍질에도 많다. 진피에는 비타민 C를 비롯하여 항암작용을 하는 비타민P, 식이섬유인 펙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테라빈유가 다량 함유돼 있다.

귤은 비타민C가 풍부하고 혈관의 탄력과 밀도 유지 기능이 있어 기침 가래, 혈관 환에 좋다. 귤의 알맹이에 있는 하얀 실 같은 귤락은 독소배출과 비위 보호로 장 강화 효능이 있다. 또 기(氣)의 순환을 좋게 한다. 기가 잘 뭉치는 가슴과 상복부에 작용해 스트레스, 소화불량을 해소한다.

명나라 의서인 ‘의학입문’에는 ‘기(氣)가 심하게 막힐 때 귤껍질만 끓인 귤피(陳皮) 일물탕이 효과적’이리고 기록돼 있다. 동의보감도 귤피의 약효를 ‘가슴에 뭉친 기(氣)를 풀어주고, 기운이 위로 치미는 것을 막는다. 기침과 구역을 다스리고, 대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 다만 많이 먹으면 담을 생기게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귤피는 토혈하는 사람, 만성기침을 하거나 마른 노인은 사용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