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25시] '묻지마 국민청원' 극성... 개선 목소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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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묻지마 국민청원' 극성... 개선 목소리 높다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8.05.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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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묻지마 폭로’ 난무... 삼권분립 훼손 지적도
20만명 동의지만 투표 1인당 3회 가능 "시스템 손 봐야"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이 의견을 말하고, 20만명의 동의 수를 넘기면 청와대가 이를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국민과 더욱 가깝게 소통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근거 없는 ‘묻지마 폭로’로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청원’이 표현‧청원의 자유에서 폭력의 자유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근간인 ‘삼권분립 훼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 국민 청원글 기본 요건 사항. 사진=청와대 캡처

◇ 정체 알 수 없는 폭로 계속 이어져

오늘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악질기업 태원전장 폐지하고 손해배상청구를 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태원전장이라는 기업은 악질기업이니 폐업시키고, 손해배상청구를 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게 내용의 끝이다. 내용으로 볼 때 태원전장에서 일했던 근로자로 보인다.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의 이름은 실명으로 거론됐다.

최근 모기업 회장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글도 올라왔다. 여직원들을 성추행 했고, 회사 자산을 개인 재산처럼 막 썼다는 폭로다. 가장 중요한 언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내용이 없다. 최소한의 시점도 없다. 그냥 ‘했으니 처벌해 달라’는 것이 전부다. 해당 기업 홍보팀은 “악의적인 묻지마식 폭로이며 사실 관계도 전혀 맞지 않는다”며 “이런 식으로 청원이 관리되면 선량한 기업과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TV조선의 종편허가 취소 청원’은 지난 4월14일 청원을 시작해 5월14일 마감까지 23만6714명이 동의했다. 내용은 “과거부터 현재진행형으로 허위, 과장, 날조 보도를 일삼고, 국민의 알권리를 호도하는 TV조선의 종편 퇴출을 청원합니다. 이념을 떠나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은 뉴스를 생산 유통하는 방송사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이다. 무엇을 허위, 과장, 날조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알맹이도 없는 이 청원글은 동의 수를 20만명 넘겨 청와대가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 ‘국민청원’ 삼권분립 훼손 지적도 

청와대가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뇌물공여 등 주요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글이 올라왔고, 동의 수가 20만명을 넘기자 청와대가 이에 대한 답변을 한 것.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청와대가 재판에 관여하거나 판사를 징계할 권한은 없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법원행정처에 전화를 걸어 해당 청원 내용을 전달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삼권분립 논란이 나온다. ‘국민의 의견과 청와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라는 펙트 전달만으로 법원은 압박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내용만 전달했다는게 청와대 주장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헌법 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합정 **픽처 불법 누드촬영 ▲위장‧몰래카메라 판매금지와 몰카범죄 처벌 강화 ▲여성도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 라는 국민 청원글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자 정부 관계자들이 국민들에게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캡처

◇ 청년 데이트 비용 지원까지 답해줘야 하는 청와대

청와대는 시시콜콜한 민원까지 답해야 하는 주민센터 이미지로 전락하고 있다. 지난해 말 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데이트 비용을 지원해 달라는 청원글이 수차례 올라오고 있다. 데이트 좀 하게 몇 만원에서 몇 십 만원을 세금으로 지원해 달라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동의 수는 100명 안팎이다. 만일 20만명을 넘겼다면 우리나라 최고 정책결정 기관이 ‘데이트 비용’을 운운해야 하는 상황이다.

데이트 비용 말고도 황당무계한 청원글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슈가 불거질 때는 하루 평균 500여건 이상의 글이 올라온다. 여론이 엉뚱하게 생성되기도 한다. 성(性)이나 지역 갈등을 조장하고, 정치 편향적인 집단 공격이 강해지고 있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불거지면 청와대가 해결해야 할 것처럼 부풀진다. 특정 인물에 대한 인민재판식의 내용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팀추월’ 문제가 된 선수에 대한 공격,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항소심 심리를 맡았던 재판장을 파면해 달라는 청원 등이 대표적이다.

◇ 20만명 동의지만 투표는 1인당 3회 가능 "시스템 손 봐야"

시스템을 손봐야 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인당 3회 투표’와 청와대 만큼은 글쓴이의 정확한 인적 사항은 파악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 청원 시스템을 보면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동의’가 가능하다. 1인 3투표제다. 국민 동의 수가 20만명이라고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6~7만명만 동의하면 청와대의 답변을 끌어낼 수 있다. 청와대는 당초 카카오톡까지 총 4개의 소셜계정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진행했다. 비정상적인 로그인 정황이 발견되면서 청와대는 3월부터 카카오톡을 중단했다.

근본적으로는 청와대 청원을 실명제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원법 5조4항은 ‘청원인의 성명·주소 등이 불분명하거나 청원 내용이 불명확한 때’ 청원을 수리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청원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청와대 국민청원만 이 같은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

국민청원 시스템을 보완하라는 ‘국민 청원글’도 올라온다.

“말도 안 되고 너무 억지만 부리는 청원들이 많네요. 최근엔 수지를 사형시켜라, 문재인 빨갱이 등등 진짜 너무한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겠지만 역시 점점 변질 되고 있는 것 같네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 청원 게시판에 공익을 위한 글도 있지만 이건 공익이라기 보단 국민의 한사람 한사람을 마녀 사냥 하는 글들이 너무 많습니다”

“삼권분립 훼손의 여지가 있는 법관 해임이라든지 페미니즘을 의무교육 하자느니 수지를 사형시키자느니 사형청원을 올린 사람을 사형시키자느니 좌/우 특정정치성향을 지지하거나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위한 창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인민민주주의의 산실로서 국격을 훼손하는데 악용되느니 빠른 폐쇄와 문재인 정부의 쇼통 그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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