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민낯③] '행시·非행시' 등급 나눠 재취업 짝짓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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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민낯③] '행시·非행시' 등급 나눠 재취업 짝짓기까지
  • 오창균 기자
  • 승인 2018.07.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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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는 2억5,000만원, 비행정고시는 1억5,000만원"
檢 적발 인사 외에도 고위 간부 출신 대기업 곳곳서 활동
@시장경제 DB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시민운동을 하던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나름대로 많은 성과를 냈다고 자평할진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진척 됐느냐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김상조의 공정위는 현실과 이론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혹평도 자자하다. <시장경제>가 공정위의 현 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공정거래위원회가 간부들을 대기업에 재취업시키는 과정에서 등급별로 연봉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까지 만든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위가 퇴직 예정 간부 명단을 관리하면서 대기업과 일대일로 짝을 지어주는 방식으로 재취업을 알선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다.

지난해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재취업 프로그램은 폐지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정위의 대기업 봐주기 관행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앞에선 경제검찰이라 불리며 대기업을 쥐어짜더니 뒤에선 대기업에 재취업하려고 혈안이 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구상엽)는 공정위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운영지원과를 통해 퇴직 예정 간부의 재취업 리스트를 작성·실행하도록 지시해 기업의 채용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정재찬(62) 전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공정위 사무처장이었던 신영선(57) 전 부위원장에게도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김학현(61) 전 부위원장에게는 업무방해 혐의와 함께 2016년 부위원장 재직 때 두 자녀의 현대차 계열사 취업청탁 혐의(뇌물수수)가 적용됐다. 2013년 공정위 1차 퇴직 뒤 취업제한 기관인 한국공정경쟁연합회 회장으로 옮기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승인을 받지 않은 혐의(공직자윤리법 위반)도 적용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공정위는 조직적으로 간부들의 대기업 재취업을 알선해왔다. 검찰은 공정위가 2010년쯤부터 지난해 초까지 해마다 4급 이상 퇴직자 10여명을 대기업 등에 재취업시켜 왔고, 정재찬·김학현·신영선 세 사람이 함께 재직하던 시기(2014년~2016년)에 퇴직자 채용 압박을 가장 심했게 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배정된 사무실이나 업무도 없이 고액 연봉만 받아 챙기는 등 노골적 채용업무 방해로 보이는 재취업자만 1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정위가 퇴직 간부들의 등급을 매겨 대기업과 재취업을 거래했다는 엽기적인 정황까지 포착됐다. '행정고시 출신 퇴직자'는 2억5,000만원 안팎, '비행정고시 출신 퇴직자'는 1억5,000만원 안팎이라는 억대 연봉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간부들의 대기업 특혜 재취업은 사무처장, 부위원장, 위원장의 승인을 거치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검찰은 공정위 운영지원과장이 기업 전무급 인사담당자들을 세종시 공정위 청사로 불러 재취업을 통보한 정황도 파악했다. 검찰은 조만간 노대래(62) 전 위원장과 지철호(57) 현 부위원장도 소환해 불법 재취업에 관여했는지 추궁할 방침이다.

검찰이 적발한 문제의 인사 외에도 현재 공정위 고위 간부 출신들은 대기업 곳곳에서 임원급으로 활동하며 억대 연봉을 받아 챙기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이 전선(戰線)을 확대해 이들에 대한 집중 조사를 벌일지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진태 의원실 제공

공정위 안팎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대기업 조사를 하던 중 윗선의 압력을 받아 사건을 덮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한 공정위 퇴직자는 "직원들에게까지 공정가격을 매기는 비정상적인 공정위를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한숨만 나온다"고 답답해 했다. 그는 "모순의 본질은 공정거래 규제를 공정위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검찰 개혁의 핵심이 검·경 수사권 분리 등을 통해 독점을 깨는 것이듯, 공정위의 규제 독점 또한 깨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관료끼리 경쟁을 시키고 관료와 시민사회가 경쟁하도록 해야 공정위의 본질적 미션인 경쟁촉진이 이뤄지는데, 공정위 자신이 규제를 독점하니 경쟁적 규제체계가 확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관경유착(官經癒着)' 논란이 커지자 정치권이 팔을 걷어부쳤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24일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공정위 출신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 감독해야 할 공정위가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대기업에게 재취업 자리를 강요한 것은 슈퍼 갑질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진태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간 재취업 심사를 받은 간부는 모두 29명에 달했으며 이 중 재취업 불가 결정이 내려진 퇴직자는 겨우 4명에 불과했다. 세부적으로 재취업 승인이 난 25명 가운데 17명(68%)은 대기업에 들어갔다. 그 외 4명(16%)은 김앤장, 광장, 태평양 등 대형 로펌에 재취업했다. 김진태 의원은 이런 사례를 나열하며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감독해야 할 공정위가 오히려 권한을 이용해 재취업 자리를 강요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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