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투서하면 하도급비 삭감"... 현대차, 하청사에 보복지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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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투서하면 하도급비 삭감"... 현대차, 하청사에 보복지시 파문
  • 오창균 기자
  • 승인 2018.09.0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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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전 구매본부장, 1차 하청 관계자에 구체적 지시 하달
“공정위서 과징금 부과하면 그 금액만큼 협력사에서 공제하라”
'약정(約定)CR' 단가인하 논란 이어 '하도급업체 입막음' 정황
현대자동차 사옥 @시장경제 DB

현대자동차가 2·3차 하청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투서할 경우 보복(報復) 조치를 하도록 1차 협력업체에 지시를 내린 정황이 포착됐다.

해당 문제는 현대차가 하청업체들에게 지급할 하도급대금을 '약정(約定)CR' 방식으로 후려쳤다는 갑질 논란과 맞물려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가 입수한 공정위 내부 문건에 따르면 2010년 4월 15일 오전 12시 14분, 현대차의 1차 협력업체 A사(社) 00팀 관계자는 내부 담당들에게 한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공정거래위원회 A사 방문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은 "현대자동차 구매 총괄본부에서 협조 요청이 와서 관련 내용 전파 및 사전공유 차원에서 알려드리오니 참고하시길 바란다"는 문구로 시작된다.

이 관계자는 "공정거래 감사를 받기 위해 현대자동차 (측이) 1차 협력사 중 규모가 큰 업체를 추천한 결과 A사가 포함됐으며 조만간 (공정위에서) 방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 2·3차 협력사가 납품대금·권위남용 같은 형평성과 대우를 이유로 공정위에 많이 투서했기 때문에 실태 조사 차원에서 규모가 큰 업체를 (공정위가) 방문한다"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대차가 내린 '보복(報復) 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상기 관련 과징금이 부여될 경우 책임과 연계된 (2·3차) 협력사는 해당 금액 만큼을 (납품 대금에서) 공제하라는 현대차 구매본부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문제를 고발한 하청업체의 하도급대금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만큼을 제하고 지급하라는 불법행위를 종용한 것이다.    

또한 "그래서 현대차 구매(본부)에서는 A사는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보이지만 협력사들과 관련이 있는 부서에 (보복 조치를) 전파해 (고발이나 투서와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예방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덧붙였다. 이메일은 "아무튼 금번을 계기로 좀 더 투명하고 문제가 발생치 않도록 모두가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고 끝을 맺었다.

현대차의 보복(報復) 지시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19조'를 위반하는 갑질 행위였다.

@현대차의 하청업체 보복조치 관련 공정거래위원회 내부 문건 발췌

<시장경제>는 앞서 현대차가 하청업체들에게 지급할 하도급대금을 '약정(約定)CR' 방식으로 부당하게 인하한 정황을 공정거래위원회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했다. 

 '약정(約定)CR'이란 특정 부품에 대한 최저가 경쟁입찰을 시키고 하청업체와 계약한 뒤에도 일정 기간에 걸쳐 단가를 후려치는 약정 조건을 뜻한다. 

이는 '하도급법 제4조 2항 7호'를 명백히 위반하는 불공정행위다. 하지만 하청업체들은 이러한 약정을 입찰서에 기재하지 않으면 낙찰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진이 입수한 공정위 내부 문건에 따르면 현대차의 1차 벤더인 서연이화(舊 한일이화)는 2010년 부당 납품단가 인하 문제로 직권조사를 받았다. 공정위는 당시 사건을 살펴보면서 서연이화가 경쟁입찰을 통해 8개의 최저낙찰자를 수급사업자로 선정하고 일정 기간에 걸쳐 약 1~3% 비율로 하도급단가를 인하하는 '약정(約定)CR' 조건을 붙이는 방식으로 하도금대금을 부당하게 결정한 사실을 적발했다.

납품단가는 현대차에서부터 내리 인하됐다는 것이 당시 공정위 판단이었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서 "피심인(서연이화)의 상위 완성차업체인 현대·기아차가 피심인에 대해 동일하게 약정CR을 하기 때문에 그 부담을 피심인이 전부 흡수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피심인의 수급사업자들에게 동일하게 약정CR을 강요한 것은 인정된다"고 적시했다.

'약정(約定)CR' 단가 후려치기도 부족해 하청업체에 대한 보복(報復) 조치를 예고한 현대차는 사실상 국내 시장을 수요독점하고 있는 거대 공룡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혁신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놓쳤지만 전(全) 세계적으로 몰려올 수 있는 충격파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메스를 들고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렇다 할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차는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와 미국 시장에서 판매 부진으로 최악 실적을 기록한 뒤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기류대로라면 하청업체들은 그동안 쌓아온 곳간을 다 털어야 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2~3년 내에 한국 자동차 부품업계가 무너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시장경제>는 하청업체 보복(報復) 조치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24일 현대차에 서면질의서를 보낸 뒤 열흘이 넘게 답변을 기다렸지만 무거운 침묵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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