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새 뒤집힌 '삼바' 결론... "증선위가 국제회계기준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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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새 뒤집힌 '삼바' 결론... "증선위가 국제회계기준 무시"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8.11.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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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 삼바 '고의 분식회계' 결정에 국내 기업 대외신인도 악재
바이오젠, 콜옵션 행사 여부 관계없이 '사실상의 기업 지배력' 보유
핵심 쟁점은 'IFRS 기준' 위반 여부...2015년 회계처리, 기준에 부합
김용범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사진=증권선물위원회

'원칙 기반(principle based)'이란 표현이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에서 이 개념은 “사안이 불명확할 때는 전문가와 회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기업을 정형화된 업태나 업종으로 분류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다변화된 산업구조의 특성을 고려해, '회계에 관한 한 전문가의 판단에 따른다'는 원칙을 담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감독기구가 1년 반 사이에 결정을 번복하고, 한국공인회계사협회가 이미 판단을 내린 사건을 뒤집었다.

14일 늦은 오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의 고의성'을 인정했다. 이 결정으로 'KOREA' 브랜드는 국제적 조롱거리가 됐다. 한국의 금융감독기구가 같은 사안을 두고, 1년 반 사이에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은, 국내 기업의 회계투명성과 대외신인도에 심각한 악재다.

회계분야에서 최고의 공신력을 인정받는 공인회계사협회의 결론을 다시 뒤집은 과정도 석연치 않지만, 무엇보다 회계전문가의 판단을 다른 제3자들이 모여 뒤엎었다는 점에서, 국제회계기준의 대원칙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증권선물위원회의 '고의 분식' 결론으로, 감사를 실시한 회계법인 두 곳은 패널티를 받았다. 소속 회계사들 역시 직무 정지 등의 징계를 받을 전망이다. 두 곳의 회계법인은 국내 업계를 대표하는 대형 사무소들이다. 당장 '한국의 회계 주권을 뿌리 채 뒤흔든 사건'이란 쓴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젠과 함께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종속회사) 혹은 관계회사로 볼 것인지 여부에 모아져 있다.

이 부분에서 상당수의 회계전문가들은, '바이오젠의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력'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당시 바이오젠은 에피스 주식을 최대 '50%-1주'(행사 후 보유지분 비율 50:50)까지 보유할 수 있는 콜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즉, 바이오젠은 콜옵션 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에피스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판단에 근거한 2015년 당시 회계처리는 IFRS의 기준에 부합한다.

증선위의 판단 목적이 '기준에 반하는 부정한 회계처리 여부를 가려내는 것'에 있었다면, 논리적으로 '고의 분식회계'라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자회사(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한 당시 회계처리는 IFRS의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위탁을 받아 사건을 감리한 공인회계사협회는 2016년 1월,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용범 증선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객관적 사실과 국제회계기준을 토대로 편견 없이 내용을 살피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증선위의 14일 결정은 김 위원장이 밝힌 기준과 모순된다.

증선위가 고의 분식이란 결론을 내면서, 이 사건 재감리를 요구해온 참여연대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은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고의 분식 회계를 저질렀다'는 식의 의혹을 쏟아내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에 유리하도록,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 주식 가치를 부풀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삼성바이오 상장 관련 특혜 의혹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린 재판부는 없다. 박영수 특검의 공소를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이재용 부회장 사건 1심을 비롯해 관련 사건 재판부 모두, 삼성바이오 관련 의혹에 대해선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 1심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사업 계열사의 성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사건 항소심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이재용 부회장 승계작업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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