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삼바 숨겨진 이슈, '감사인 지정'이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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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삼바 숨겨진 이슈, '감사인 지정'이 더 문제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8.12.0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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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가 회계법인 지정...기업 현실 외면한 형식 감사 초래
회계전문가 “정부 눈치 보는 회계, 감사 품질 저하”  
前 국제회계사연맹 회장 “금융감독당국 개입 자제” 조언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진=시장경제DB

고의 분식회계 여부를 둘러싼 이른바 '삼성바이오 사건' 집행정지신청 심문기일이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집행정지의 대상이 된 '감사인 지정제도'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 회계를 감사할 '외부 감사인 지정권'을 금융감독당국이 보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제도는, 기업의 회계투명성과 회계 품질 제고를 위해 도입됐다. 감사인 지정 권한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행사한다.

앞서 지난달 14일 증선위는 삼성바오이로직스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재감리 결과를 반영해, 삼성바이오가 2015년 고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증선위는 2012~2013년 회계에 대해서는 '과실', 2014년 회게에 대해서는 '중과실'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에 대해 과징금 80억원, 재무제표 재 작성,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등의 제재를 의결했다.

이 의결이 효력을 발생하면, 삼성바이오는 기존 재무제표를 다시 작성해야 함은 물론 앞으로 3년 동안 증선위가 지정한 회계법인에 외부 감사를 맡겨야 한다.

삼성바이오는 같은 달 27일 위 의결 내용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의결의 효력을 본안 판결 때까지 정지해 달라는 신청을 함께 냈다.

기업 회계 실무에 밝은 전문가들은 증선위 의결 중 기업에 가장 부담을 주는 것으로 재무제표 재 작성과 감사인 지정을 꼽았다.

◆기업 옥죄는 감사인 지정 제도
재무제표 재 작성은 해당 기업의 대외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주식시장 및 투자자에 미치는 영향 역시 심대하다.

이와 달리 감사인 지정은 기업의 영업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매우 크다. 재무제표 재 작성이 기업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면, 감사인 지정제도는 해당 기업의 손발을 묶는다.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회계법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기업의 회계 투명성과 회계 품질을 강화한다는 데 있다.

기업에 대한 외부 감사를 특정한 회계법인이 장기간 맡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유착관계를 사전 차단하고, 이를 통해 외부 감사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제도 본래의 취지다.

그러나 국내 기업 회계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감사인 지정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회계처리의 대원칙이 사후 적발 및 규제 중심에서 '사전 예방'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이 감사인 지정 제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제도가 감사 품질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떨어트리는 역기능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현실 무시하고 규정만 보고 감사”
국내 회계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A는 “감사인 지정제가 오히려 감사 품질을 떨어트리고 있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는 감사인 지정제도 자체가 없었다. 삼성이든 현대든 기업은 원하는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길 수 있었고, 대체로 같은 회계법인이 장기간 감사를 실시했다. 오랜 기간 같은 회계법인이 동일한 기업을 감사하다 보니 유착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그 결과 이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제도를 운영해 보니 감사 품질이 되레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회계법인이 기업 현실을 무시하고 규정만 보고 감사를 하니 그 품질이 좋을 리 없다”

◆회계법인, 증선위 눈치보기 급급
A는 이 제도가 기업의 투자 및 영업 활동을 옥죄는 역기능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정에 의해 감사인으로 선임된 회계법인은 증선위의 눈치를 더 심하게 볼 수 밖에 없고, 기업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규정에 얽매인 회계처리를 고수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

가령 예를 들어 B라는 기업이 신약을 개발하는 C라는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고 가정할 때, B는 C의 현재 재무제표가 아닌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를 한다.

바이오-생명과학-인공지능(AI)-자율주행기술 등 첨단 업종에 대한 투자는 거의 대부분 현재의 실적이 아닌 미래 가치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들 기업은 연구개발이 성과를 나타낼 때까지 상당 기간 사실상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판관비와 연구개발비 설비투자비용만 나가는 적자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약 이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현재 실적을 기준으로 이뤄진다면, 실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지정에 의해 감사에 나선 회계법인은 증선위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기업의 현재 실적을 기준으로 적절성을 판단한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B는 무리한 투자로 손실을 키운 부실 기업이 된다. '감사 거절'이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재무제표 작성 및 감사 과정에서 B와 회계법인이 갈등을 빚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계회사인 바이오에피스.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 사건에서도 위 사례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삼성바이오가 미국 바이오젠과 공동 출자해 설립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재무제표 상 법인이 출범한 2012년부터 2015년 이전까지 적자투성이 기업이었다. 바이오시밀러라는 업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이오젠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 초기 투자 비중을 낮췄다. 지분을 15%만 보유하고 5명의 이사 중 4명의 선임권을 삼성바이오에 줬다. 대표이사 선임권 역시 삼성바이오가 행사했다. 바이오젠은 매년 공시를 통해 에피스의 지배권이 삼성바이오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삼성바이오가 2014년까지 에피스를 '종속회사'로 회계처리한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존재했다.

에피스의 바이오복제약이 국내와 유럽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얻은 건 2015년이다. 에피스가 본격적으로 사업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자 삼성바이오는 에피스의 지위를 지분법 상 관계회사로 변경했다. 에피스의 실적 개선이 기대되면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에피스 설립 당시 바이오젠은 회사가 향후 성과를 낼 때를 가정해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가졌다. 이 권리를 행사하면 바이오젠은 에피스 지분율을 최대 '50%-1주'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의 공동경영체제로 전환된다.

바이오젠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올해 6월28일 삼성바이오에 약 7억 달러를 지급하고 이 권리를 행사한다고 밝혔다. 같은 달 29일 삼성바이오도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사실을 공시했다.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에 따라 보유 중인 에피스 주식 1956만 7921주 중 922만 6068주를 양도했다.


◆'내부 문건 폭로' 박용진 의원 주장의 허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시장경제DB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달 7일 이른바 '금감원 입수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 폭로를 통해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삼성바이오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회계처리를 변경할 사유가 없는데도 에피스의 지위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꿨고, 이것이야말로 고의 분식회계의 결정적 증거라는 것이 박 의원 주장의 핵심이다.

이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변경에는 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복제약의 국내외 판매 승인이란 '사정변경사유'가 존재한다.

회계기준은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경우, 기업은 자사의 실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이 '원칙 중심' 국제회계기준(IFRS)의 특징이다.

에피스의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는 사실이 존재하는 이상,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는 상태였다. 이는 곧 에피스의 실적 개선으로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 지배력이 현실화 됐음을 의미한다. 에피스를 지분법 상 관계회사로 변경한 데에도 합리적 이유가 존재한다. 

◆전 국제회계사연맹 회장 “금융감독당국의 감사인 지정, 위험해 보여” 
금융감독당국이 감사인 지정권을 쥔 현재의 제도가 감사 품질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해외에서도 나왔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이달 초 한국을 방문한 올리비아 커틀리 전 국제회계사연맹 회장은 “금융감독당국이 기업 감사위원회를 배제한 채 규제에 중점을 둔다면 감사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감사인 지정제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구체적으로 그는 “감사인이 자주 바뀌면 해당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산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금융감독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것도 위험해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커틀리 회장은 한국 정부의 회계 개혁 취지는 공감하지만, 당국이 기업 및 회계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수렴할 것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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