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주총 비상...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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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주총 비상...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강행
  • 양원석 기자
  • 승인 2019.02.0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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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주총서 정관변경 추진...상징적 권리 행사지만 파장 만만치 않아
10%룰에 걸린 대한항공은 일단 안도...재계-금융계 ‘연금 사회주의’ 우려
사진=시장경제DB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운명을 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1일 전체회의를 열고 ‘제한적 범위 안에서의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해서는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되, 그 행사범위와 방식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이날 기금위 결정의 요지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내달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의 형태로 ‘정관변경’을 추진키로 했다.

국민연금 기금위는 이날 오전 서울 더 프라자호텔에서 ‘2019년 제2차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의결했다.

◆‘낮은 단계’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재계에 대한 경고 성격 짙어  
국민연금 기금위가 꺼내든 ‘정관변경’은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방법 가운데서도 수위가 낮은 편에 속한다.

이사의 해임이나 선임, 이사의 업무 정지 등 훨씬 강력한 방법을 제외하고 ‘주주제안에 의한 정관변경 추진’으로 수위를 조절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경영참여라기 보다는 앞으로 스튜어드십코드를 언제든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한진칼로 제한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날 국민연금 기금위는 한진칼에 대해서는 ‘제한적 주주의결권 행사’를 결정했지만,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결정은 내린 근본적 이유는 자본시장법 상 ‘10%룰’ 때문이다.

◆10%룰 때문에...대한항공에는 권리 행사 안 하기로 
자본시장법은 당해 기업이 발행한 주식의 총수를 기준으로, 지분 비율이 5% 이상인 주요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투자자의 지분 비율이 5%를 넘는 경우는 해당 투자자의 보유지분 비율이 1%p 이상 변동되는 경우, 5거래일 안에 그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보유지분 비율이 10%를 넘는 경우는 ‘보유 목적’을 밝혀야 한다.

만약 보유 목적이 단순 투자라면 스튜어드십코드는 행사할 수 없다. 지분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라고 신고한 경우는, 보유 주식이 1주라도 변동되면 5거래일 안에 신고를 해야 한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행사와 관련에 주목을 끈 것은 10%룰 가운데 ‘목적 변경’ 항목이다.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참여’로 변경한 투자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추가 제한이 붙는다.

해당 투자자가 6개월 안에 거둬들인 단기차익을 전액 반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가 내부정보를 악용해, 단기간에 부당한 이득을 취득하는 위법행위를 예방키 위한 방어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34%와 대한항공 지분 11.56%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진칼에 대해선 지분보유 목적을 변경하더라도 6개월 이내 단기차익 반환 부담이 없다.

대한항공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지분 비율이 10%를 초과하기 때문에, 지분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한다면 단기차익 반환 의무가 발생한다.

단기차익 반환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 본래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기금의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차익 실현이 필요하다.

지난달 23일 국민연금 기금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내부 논의 끝에 한진칼, 대한항공 모두에 대해 스튜어드십코드 행사에 반대한다는 다수 의견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이 안건을 논의한 수탁위에 따르면, 한진칼에 대해선 5대4, 대한항공에 대해선 7대2로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반대 의견이 많았다.

◆대통령 발언 직후 분위기 바뀐 국민연금...‘청와대 눈치보기’ 논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스튜어드십코드 실행 방침을 밝히면서,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수탁위 위원 과반 이상이 부정적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기금위가 수탁위의 논의 내용을 뒤집는 결론을 냈다는 점은 이런 견해에 힘을 실어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스튜어드십코드 행사의 필요성을 언급한 상황에서, 국민연금 기금위가 현실론만을 내세워 청와대의 입장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기금위 결정으로 국민연금은 내달 한진칼 주총에서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횡령·배임의 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다면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의 정관변경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 내용을 풀이하면 한진칼 이사가 횡령 혹은 배임 혐의로 기소돼 일부라도 실형 확정판결을 받는다면, 자동으로 그 직을 상실한다. 해당 이사 해임을 위한 별도의 주주총회 소집이나 결의가 필요치 않다. 현재 조양호 회장은 회삿돈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돼 있다.

◆조양호 회장 우호지분이 전체의 45% 안팎...정관변경 제안, 통과 가능성 낮아 
한진칼 주총에서의 정관변경 추진은 말 그대로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다. 한진칼의 지분 구조를 보면 조양호 회장 일가 지분이 28.93%에 달한다.

정관변경은 회사법 상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이다.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 출석한 주주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추진하는 정관변경이 이뤄지려면 또 다른 대주주인 KCGI(이른바 강성부 펀드)와 손을 잡는 것은 물론, 다른 기관 투자자들의 동의도 이끌어내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KCGI와의 연합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들이 소액주주 등에게 보낸 주주제안서를 살펴봤지만 그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반면 조 회장 측은 33%만 확보하면 정관변경을 막을 수 있다. 한진칼은 조 회장 일가에 이어 국민연금과 KCGI가 2·3대 주주로 이름이 올라 있다. 그 뒤를 이어 크레디트스위스가 3.92%, 한국투자신탁운용이 3.81%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 일가 보유지분에 우호지분을 합치면 약 45%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진칼은 지난해 7월30일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첫 적용 사례가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이 시장에 미칠 혼란 등 파장을 고려해 낮은 단계의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방침을 밝혔지만, 재계 및 금융계는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연기금을 앞세워 민간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려 한다는 ‘연금 사회주의’ 우려도 여전하다. 참여연대 등 친정부 성향 시민단체의 ‘스튜어드십코드 실행 압박’도 점점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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