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학 박사 "독립적 주주권행사 천명한 스위스 모델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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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학 박사 "독립적 주주권행사 천명한 스위스 모델로 가야"
  • 오창균, 김보라 기자
  • 승인 2019.02.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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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 20일 바른사회 토론회
"집사 완장 차기 전, '정치권으로부터 독립' 원칙 천명해야"
"복대리인 문제 현실화... 스튜어드십 책임론 본래 취지 변질"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3월 주총, 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 정책토론회에서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발제를 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국민연금의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바른사회시민회의가 '3월 주총, 국민연금 경영개입 쟁점과 전망'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국민연금 정책토론회는 발제와 토론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패널이 각자의 전문적 영역을 바탕으로 쟁점을 정리·분석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의 근간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 배경과 제도의 본래 목적, 국내 현실과의 충돌,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 비판 등 다양한 쟁점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워싱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스튜어드십 책임론의 오해와 이해: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행동주의는 바람직한가'를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 기관투자자는 집사(steward)인가, 대리인(agent)인가

황인학 위원은 먼저 스튜어드십 책임의 본질과 한계를 지적했다.

스튜어드십 책임은 일반인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개념이다. 학계에서 흔히 말하는 스튜어드십 책임은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 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수익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기관주주는 투자대상회사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 외에 이사·경영자와 소통하고 경영에 관여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개념을 말한다.

영국에서 최초로 이 개념을 부각한 배경은 기관투자가 행동주의를 통해서 상장회사의 부재지주 경영 및 단기주의 경영행태를 시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단기주의 주범이기도 한 기관투자가에게 집사의 지위를 부여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단기 매매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산업적 특성과 기관투자가 내부의 자산운용구조와 보상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유인 불합치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스튜어드십 책임을 강조해도 효과가 없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스튜어드십, 대리인(agent) 이론이 적합하다는 건 통설

특히 황인학 위원은 "이론적 측면에서도 스튜어드십 이론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주와 경영자 관계처럼 고객과 기관투자자 관계는 잠재적 이해상충 문제가 있는 주인·대리인 관계로 보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신탁법 등에서 기관투자자에게 수탁자 책임을 지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집사는 투자자 입장에서 봤을 때 믿고 맡기거나 신뢰해야 하는 존재인데 반해 대리인은 의심해야 하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황인학 위원은 "스튜어드십을 둘러싼 집사(steward)·대리인(agent) 이론 중에 어느 쪽이 더 현실에 적합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후자가 통설"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집사 이론은 비영리기관이나 종교단체 또는 소규모 가족회사에 적용 가능한 주변부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황인학 위원은 "기회만 있으면 이익 실현에 가장 민활하게 움직이며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접근하기 힘든 각종 금융기법을 동원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가에게 아무런 제도적 보완조치 없이 집사 이론을 적용하자는 것은 순진하거나 이상주의적의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 "국민연금이 집사? 내로남불 모순(矛盾)" 직격탄

황인학 위원은 "사실상 고객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는 기관투자자들이 스스로 집사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내로남불 모순(矛盾)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총에서 선임된 이사는 대리인이고 기관 주주 본인은 집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론적으로는 집사는 경영자를 상시 감독·통제하는 이사에게 가장 적합한 타이틀이다. 황인학 위원에 따르면 영국 코드에서도 스튜어드십의 주요 책임은 이사회에 있다. 기관 주주는 이를 보완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코드의 실제 내용을 보면, 기관투자자는 경영 관여를 통해 회사와 이사회 결정을 바꾸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만약 기관투자자의 경영 관여로 회사 가치가 하락하거나 일반주주들이 피해를 입게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질지 불명확해 진다.

이사는 업무집행지시자로서 법적 책임이 있지만 기관투자자는 코드에서 정한 대로 했기 때문에 면죄부를 줘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황인학 위원은 "경영 관여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회 추구와 자기 이익 실현에 재빠른 기관투자자들에 의해 오·남용될 우려가 높다"고 역설했다.

#. 연기금 지배구조 개선 시급... '연금 사회주의' 우려 비등

황인학 위원은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의 경우 의무 가입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대리인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은 정부가 기금제도 관리 뿐 아니라 기금을 운영하고 통제하는, 연기금 자체의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황인학 위원은 "연기금이 자체의 지배구조 문제를 방치한 채 스튜어드십 책임론의 본질과 배경, 기대효과 논쟁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없이 '국민의 집사'라는 완장을 스스로 차고 상장회사 경영 관여에 나서면 복대리인 문제가 현실화될 우려가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복대리인 문제의 하나가 연금 사회주의화 우려"라고 덧붙였다.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까지 적극 관여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연기금 행동주의(行動主義)가 회사 가치, 연금 수익성, 국민경제적 파급효과 면에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 "스위스처럼 독립적 주주권 행사 원칙 천명해야"

황인학 위원은 "국민연금기금이 집사의 지위를 인정받으려면 자체의 지배구조부터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스위스 연기금협회에서 자율 제정한 코드에서처럼 그 어떤 정치적 개입이나 제3자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는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ESG는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으로 국민연금기금이 이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회사가치는 물론이고 연기금의 수익성, 안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황인학 위원은 또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책임 활동의 일환으로 고배당 정책을 강조하는 것도 주식의 장기 보유에 기초해서 회사의 중장기 가치를 지향한다는 스튜어드십 책임론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재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스튜어드십 책임론의 본질·배경·목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국민연금기금의 구조적 특징과 한계를 감안할 때 (국민연금기금이) 적극적으로 기업 경영 관여에 나서는 것은 현재 상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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