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조와해 프레임으로 '답정너' 강요하는 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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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조와해 프레임으로 '답정너' 강요하는 檢
  • 유경표 기자
  • 승인 2019.04.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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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와해' 9차 공판... 檢, 모순된 공소사실 도마위
검찰 "삼성, 노조있는 사업장 폐업토록 협력사에 지시" 주장
내부문건에는 "협력사 재계약, 노조 상관없이 ‘실적기준' 결정"
아산 협력사 경우, 2013년 평가 저조했지만 되레 재계약 권유
노조파업에 건강악화까지... 협력사 사장, '위장폐업' 억울한 오명
사진=시장경제DB

“2011년부터 3년간 적자 경영을 해 왔습니다. 직원들은 노조를 핑계 삼아 수시로 수임을 거부했습니다. 2014년 1월에는 무려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4차례나 파업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지속적으로 불편을 겪어야 했고, 회사 운영에도 막대한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저는 건강도 잃었습니다. 2014년 2월 초 스트레스성 통풍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회사를 다시 정상적으로 경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부산 해운대 협력사(서비스센터) 사장 A씨가 밝힌 폐업사유를 재구성한 글이다. 그는 노조와의 갈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하다. 오죽하면 수년간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사업장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닫겠다는 결정을 내렸을까. 당시 노조가 어떤 이유에서 파업을 벌였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회사가 3년 동안 적자로 허덕이는 마당에 파업이라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 문건은 지난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의혹 사건 9차 공판에서 공개됐다. 매주 열리는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전·현직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임직원 32명에 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여부를 놓고 날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검찰은 삼성측이 노조와해를 목적으로 ‘노사전략 문건’을 작성한 뒤, 이를 바탕으로 각 계열사와 협력사에 노조가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불법적인 부당노동행위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노조가 이미 설립된 협력사의 경우, 삼성측이 계약해지 또는 위장 폐업을 지시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검찰은 압수한 삼성 내부 문건을 인용해 노조활동이 활발했던 부산 해운대·충남 아산·경기 이천 협력사가 폐업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삼성이 노조가 존재하는 협력사들에 대해선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그런데 협력사 사장의 폐업 사유서를 보면 검찰의 주장에 의문이 든다. 정말 삼성이 협력사 사장에게 지시해 사업장을 폐업토록 하고, 수많은 노조원을 길거리에 나앉도록 만든 것일까. 아니면,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파업이 빚어낸 결과일까. 

답은 문건에 나와 있다.

변호인단이 공개한 삼성 내부문건을 보면, 재계약 심사는 노조의 존재 유무와는 무관하게, 철저히 ‘실적’을 기준으로 결정됐다. 실제로 노조가 있더라도 실적이 좋으면 평가 등급이 높았고, 노조가 없는 협력사라 하더라도 실적이 좋지 않다면 최하 등급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삼성에게 있어 A/S는 제품의 판매 실적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A/S 거점은 지역별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폐업할 경우 일정기간 서비스 공백이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기업이 고객의 신뢰를 담보로 노조와해를 획책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만든다. 업계의 실정을 모르는 비현실적 주장이란 얘기다.

사진=시장경제DB

제일 억울한 이는 부산 해운대 협력사 사장이다. 문건에 따르면 그는 “노조 파업으로 경영이 어려워져 폐업을 했는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우리같은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위장폐업’이라며 비난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다면 해운대와 마찬가지로 폐업을 결정한 충남 아산, 경기도 이천 지역 협력사의 경우는 상황이 어땠을까.  

놀랍게도 이들 지역에선 더욱 심각한 '노조 갑질'이 벌어졌다. 아산 협력사 사장이 밝힌 폐업 동기를 보면, 노조 부회장 등 3명이 불량자재를 절취해 외부로 반출한 다음, 고물업자에게 판매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심지어 수리기사와 자재팀장 등도 회사 폐자재를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고물상에 팔아넘기는 등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기강도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직원들은 사장의 주말근무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회사의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움직임을 보였다고 문건은 적고 있다. 

아산 협력사의 경우 2013년 평가 결과에서 매우 저조한 점수를 받았음에도 삼성은 재계약 심사 기회를 한번 더 주기로 결정했다. 서비스 업무공백 사태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아산 협력사 사장은 끝내 회사 문을 닫았다. 문건을 보면 극심한 노조활동과 경영악화, 당뇨·고혈압 등 지병이 폐업을 결정하게 된 주요 이유였다.  

이천 협력사도 사정은 비슷했다. 노조측은 협력사 사장의 이름을 집회 제목에 넣어 그를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등 비윤리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삼성과 협력사 사장이 공모해 노조와해를 획책했다"는 검찰 주장의 신뢰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검찰은 삼성이 노조와해를 목적으로 협력사에 폐업을 지시했다는데, 문건에는 되레 삼성이 노조가 있는 협력사에 재계약을 권유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같은 공소사실의 모순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검찰의 편향된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 업계의 현실은 등한시 하고, 성급한 추단으로 문건 내용을 입맛대로 선별해 ‘퍼즐 맞추기’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오랜 기간 이어진 적자경영과 노조의 강경 파업, 건강 악화 등으로 인해 협력사 사장이 고심 끝에 폐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묻혀버린 채, 검찰이 만들어 낸 '노조와해' 프레임 안에서 '위장폐업'이라는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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